저는 18학번으로 지방 4년제 대학교에 진학해서 군대도 다녀오고 휴학 없이 졸업을 마쳤습니다.하지만 현재 한의대 진학이라는 꿈을 가지고 수능을 다시 준비 중에 있습니다. 근데 처음의 마음가짐은 얼마가지 못하고 계속 빈둥대며 놀고만 있네요. 마음 한 켠엔 불안감만 쌓이고 말이죠. 대학교를 다니는 동안 해외봉사도 다녀오고, 스터디 그룹으로 상도 받고, 동아리 활동도 2년 동안 하고, 교내 서점에서도 1년 반 근무했습니다. 마지막 졸업학기에서는 공기업 인턴에 붙어서 6개월간 공기업에 다니기도 했고요. 또 전공인 무역을 살려서 보세사랑 원산지관리사, 컴활 등 자격증도 취득했고, 졸업학점도 4.4점으로 학과 내 졸업생 중 1등으로 졸업했습니다. 지방 대학교지만 자격증에 인턴 경험에 성적까지, ,, 어학점수만 빼면 남부러울 것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근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해서 졸업을 하고 나니 뭘 해야할지를 몰랐습니다. 대학교도 성적맞춰서 아무 데나 왔고, 학과도 그냥 무역학과가 그럴싸해보여서 왔습니다. 공부도 그냥 해야되니까, 다른 애들한테 지기 싫으니까 열심히 했습니다. 근데 졸업을 하니 친구들은 각자 자기 길 찾아서 가고, 공부 시키고 이끌어주시는 교수님도 없고, 뭘 해야할지 모르겠더군요. 그래서 지금까지의 스스로를 돌아봤습니다.서점에서, 사람들과 교류하고 땀흘려 일하고 정리하고 공간을 꾸려나가는 일이 정말 마음에 들었습니다.인턴 생활하며, 하루종일 책상 앞에 앉아 모니터만 바라보는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타자소리와 간간히 들리는 통화소리가 너무나 숨막히고 답답했습니다. 그나마 행사가 있는 날에는 숨통이 트이고 활기가 돌더라고요. 아, 나는 사무직은 안 맞는 구나. 느꼈습니다.한 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나의 일을 하고싶었습니다. 남들을 위해 하는 일이 아닌 나의 일을 스스로 꾸려나가고 땀흘리며 보람찬 일을 해나가고 싶었습니다. 사람들과 교류도 종종 해가면서요. 그래서 이런 저런 알바를 해볼까 하다가, 아버지 일을 배워보자 싶었습니다. 아버지는 흔히 말하는 배관공이십니다. 건물을 지을 때 배관을 설치하고, 각종 수도 문제를 해결하십니다. 기술을 배워서 내 일을 일궈나가면 되겠구나 싶었습니다. 근데 그렇게 5~6개월 일을 배워나가는데, 일을 마치고 오면 완전히 녹초가 되어 밥먹고 쓰러져 자기 바빴습니다. 일 환경에서도 먼지와 소음에, 추위와 더위에, 거친 사람들, 무시하는 태도의 사람들과 부딪혀 가며 하루하루 보냈습니다.점심식사를 하러 갈 때면 먼지투성이가 된 스스로 모습이 부끄러워서 혹여나 나를 아는 사람을 보면 어떡하나 걱정이 앞서곤 했습니다.친구들이 뭐하고 지내냐고 물어도 자랑스러운 직업이지만 뭐가 부끄러웠는지 떳떳하게 말하지를 못했습니다.그렇게 또 생각에 잠겼습니다. 이게 정말 내가 원하는 일일까? 이렇게 일을 배우다 보면 1년 뒤, 3년 뒤 나의 미래는 어떨까?나 스스로가 나의 일을 부끄러워 하는데, 남들이 도대체 어떻게 봐주길 바라는 걸까.. 진짜 내가 원하는 걸 해보고 싶었습니다.솔직히 말하면 욕심이 컸습니다.남들이 보기에 그럴싸해 보이고, 돈도 잘벌고, 미래 전망도 좋고, 자랑스레 말할 수 있는 그런 직업에 대한 동경이 생겼습니다. 그 시기에 대학교 시절부터 수년간 써오던 일기장들을 꺼내 읽어보았습니다. 그 중에 한 구절이 눈에 띄었습니다.‘아 나도 한의사 해보고 싶다’한창 피부때문에 한의원을 다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때의 일기장의 한 구절을 본 것입니다. 다시 심장이 두근거렸습니다.고등학교 때의 나라면, 내가 무슨 한의사를…이러고 말았을 테지만, 새로운 직업에 대한 갈망이 있었던 당시 저에게는 새로운 하나의 목표가 생긴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6개월 간의 아버지 기술을 배우는 걸 관두고, 부모님 허락 끝에 수능에 다시 도전하게됩니다. 그게 2024년 7월 말이었고, 아쉽게도 수능 성적은 개판이 났습니다. 딱 일 년만 더 해보겠다고, 믿어달라고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2025년 수능에 다시 출사표를 던졌습니다. 그렇게 현재 2025년 6월 중순이 되었고요.하지만 처음의 다짐은 어딜 갔는지 하루 하루 불안감과 걱정 속에서 공부는 공부대로 못하고, 시간은 시간대로 날리고 있습니다. 하루 공부 좀 한다싶으면 또 하루는 완전히 풀어져 버리고, 열심히 하겠다 다짐을 해도 이틀을 남기기가 힘드네요. 그마저도 하루를 공부로 꽉 채워서 하지도 못하고요. 남들 시선에 의해 갖게된 목표라서 그럴까요, 나이는 들어가는데 불안감이 점점 커져서 그런걸까요.. 열의와 불타는 의지는 온데간데 없고요, 그냥 하다말고 하다말고.. 반복입니다. 죽이되든 밥이되든 올해 수능은 남은시간 정말 열심히 준비해서 쳐보고싶습니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잎으로 뭘하든 아무 것도 제대로 해내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내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 들기도 하고, 해도 이게 될까라는 의심이 들기도 하고,, 모르겠어요.‘진짜 미친듯이 꼭 한의사 하고싶다!!!’라는 마음보다는 ‘내 입으로 뱉은 말에 제대로 책임지고 열심히 해내보고 싶다’라는 마음이 더 커요 그냥.결론도 못 내겠고, 뭘 질문하고 싶은지도 모르겠어요. 그냥 공부가 계속 손에 안 집히고, 불안감만 커져서 써봅니다.
말씀해주신 내용을 차분히 읽어보았습니다. 4년제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다양한 경험을 쌓으셨음에도 불구하고, 진로에 대한 깊은 고민과 방황을 겪으셨다는 점이 느껴집니다. 열심히 노력해서 성과를 이루었지만, 그것이 진정으로 원했던 길이 아니었을 때 느끼는 공허함과 혼란스러움이 얼마나 클지 짐작이 갑니다.
한의대 진학이라는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다시 수능에 도전하기로 결심하신 용기가 대단하다고 느껴집니다. 과거의 일기에서 발견한 작은 단서가 다시 심장을 뛰게 했다는 이야기는, 어쩌면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던 열망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그 목표가 순수한 열정뿐만 아니라 외부의 시선이나 성공에 대한 동경과도 연결되어 있어 현재 혼란스러움을 더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부분도 공감이 됩니다.
하지만 '진짜 미친듯이 꼭 한의사 하고 싶다'는 마음보다 '내 입으로 뱉은 말에 제대로 책임지고 열심히 해내보고 싶다'는 마음이 더 크다는 말씀에서, 스스로에 대한 책임감과 약속을 지키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느껴집니다. 어쩌면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한의사'라는 최종 목표 자체보다, 남은 시간 동안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해보고 싶다는 그 의지를 지키는 것일지도 모릅니다.